상단영역

본문영역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1.31 13:32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 차 한 대를 열 사람이 공유하는 시대

장주식 작가

2029년 1월 10일, 여주시청 앞. 박유비씨는 휴대폰으로 자동차를 부른다. 같이 있던 김관우씨는 앞에 와서 멈춘 승용차를 타고 떠난다.

“에이, 나오기 전에 부를걸.”

유비씨가 투덜거린다. 관우씨는 시청 담소방에서 나오기 전에 휴대폰 앱으로 승용차를 미리 불렀다. 2분 뒤 유비씨가 부른 승용차가 도착했다. 유비씨는 운전석에 앉아 모니터에 말했다.

“여주대 인문관으로 가 줘.”

“네. 알겠습니다.”

모니터가 대답하고 자동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태우기 위해 잠깐씩 정차하는 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자동차가 길 위를 움직이고 있다.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는 특별히 전세를 낸 차 말고는 없다. 예전에 주차장으로 쓰던 장소는 대부분 공원을 조성하였다. 여주시가 자랑하는 녹색공원들이다. >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된 10년 뒤를 상상해 본 내용입니다. 연구자에 따라 상용화 시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자율주행자동차 시대는 ‘결정된 미래’라고 보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우버’가 사용자와 자동차를 이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쏘카’가 플랫폼 타다를 출시했지요.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 되면 자동차는 소유 개념에서 ‘이동서비스 개념’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동서비스란 개인이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 자율주행자동차가 목적지로 이동시켜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이 서비스는 누가 담당할까요? 바로 자동차와 이용자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 운영자입니다. 플랫폼 운영자는 이용자에게 수수료를 받아서 이윤을 창출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플랫폼을 선점하는 문제는 기업들이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현재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 움직이는 기업은 글로벌 자동차제조업체인 미국 GM과 포드,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폭스바겐, 한국의 현대차 등과 차량호출 업체인 우버와 리프트, 구글 같은 정보통신업체, 인텔과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업체도 새로운 교통 환경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플랫폼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이윤을 얻을 것입니다. 자율주행자동차시대는 다양한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활용률이 4% 밖에 안 되는 비효율적인 자동차 소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 수가 줄기도 하고 자율주행차는 전기차로 운행할 것이므로 환경오염 개선에 도움이 되며, 많은 주차공간을 다른 용지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도 크게 발생합니다. 우선 한국만 보더라도 연간 16조원에 이르는 택시업계에 엄청난 타격이 예상됩니다. 또 자동차 제조업체도 자동차를 판매해서 얻는 수익 중 80%가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액의 10%를 자동차업계가 담당하고 있으므로 어마어마한 사회변혁이 예상됩니다.

이런 변화는 빠르면 10년 안에 다가온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요? 자율주행자동차 이동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 소유합니다. 소유하는데 필요한 자동차 유지비(보험료, 수리비 등)는 당연히 기업이 지출합니다. 기업은 이용자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제 기업윤리가 문제가 됩니다. 플랫폼을 독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시작하면 이용자는 큰 불편을 겪게 되겠지요. 또 자동차와 관련하여 생계를 꾸리던 모든 노동자는 쫄쫄 굶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율주행자동차’는 여러모로 이로운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이로움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서 곤란합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있음은 이로운 도구지만 없음으로 쓸모가 생긴다.”

맞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라는 이로운 도구가 진정 모든 이에게 쓸모가 있으려면 정말 중요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노자의 말에 따르면 ‘없음’이라는 말이 힌트가 되는데요. 없음은 비움과 같은 말입니다. 이로운 도구가 어느 한곳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집중되지 않고 비우는 마음으로 이윤을 나눠야 한다는 겁니다. 시스템이 변화하여 생계를 잃은 이들에게 이윤이 나눠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에 기대어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에겐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이윤을 많이 남긴 기업이 소득을 나눠가지는 방향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시스템은 늘 새롭게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경 11장 : 三十輻共一(삼십폭공일)러니 當其無(당기무)라야 有車之用(유차지용)이라. 埏埴以爲器(선식이위기)러니 當其無(당기무)라야 有器之用(유기지용)이라. 鑿戶牖以爲室(착호유이위실)이러니 當其無(당기무)라야 有室之用(유실지용)이라.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요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이니라.>

서른 개 바퀴살이 바퀴통 하나에 모였는데, 그곳이 비어 있어야 수레로서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데, 그곳이 비어 있어야 그릇으로서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고 방을 만드는데, 그곳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 쓰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있음은 이로운 도구가 되고 없음은 쓸모가 된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