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최종편집:2024-03-28 11:17 (목)
실시간

본문영역

세상을 떳떳하게 살아야 되는 이유

세상을 떳떳하게 살아야 되는 이유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4.03 13:09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순봉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실무위원

며칠 전 무슨 이야기 끝에 한 친구가 이십여 년 전 자신이 겪었던 일화 한 토막을 꺼냈다. 수도권 어느 도시에서 철거반대투쟁을 할 때였는데 자신은 개발사 측이 제시한 회유책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이후 비록 생활은 곤고했으나 그때의 선택 때문에 마음은 늘 떳떳하다고 했다.

얼마 전 평생 공무원을 하다 퇴직한 분을 만났는데 자신은 30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징계 한 번 받지 않았다며 떳떳한 삶이었다고 자부했다. 짐작컨대 부정과 비리에 얽히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떳떳한 삶은 이렇듯 자기 나름의 근거가 있고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떳떳하게 살았는가 되돌아보니 잠깐 내 인생의 스무 고개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시험감독 없이 시험을 치렀으나 단 한 번도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반독재 투쟁을 한 일이다. 세 번째는 전세 들어 살고 있던 방이 건물주의 사업 부도로 경매로 넘어가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도 방 구하러 온 사람에게 그것을 떠넘기지 않은 일이다. 그 뒤 나는 보증금의 삼분의 일만 받고 나와 몇 해 동안 월세 방을 전전했다.

되돌아보면 현실적 이익은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후회가 없으니 손해도 없는 삶이었다.

다시 물어보자. 만약 그때 내가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거나 '커닝페이퍼'를 만들었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시위를 이끌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세입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대저 후회 없는, 떳떳한 삶이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그런데 오나라가 진나라를 침략하여 식량은 떨어지고 따르는 이들은 피로에 지쳐 일어날 수조차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에 자로가 화난 얼굴로 물었다.

"군자도 역시 곤궁함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에도 굳건하지만 소인은 곧 절도를 잃는다.”

군자는 곤궁해도 굳세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곧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곤경에 빠졌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준다는 교훈이다. 뉘앙스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말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이따금 좌우명처럼 되새기는 짧은 글이 있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널리 알려진 문장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세상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생은 떳떳하다. 그 떳떳함으로 두려움조차 사라지고 없다. 이처럼 두렵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은 자유롭게 된다.

허나 이처럼 자유로워지기까지 현실인으로서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을까? 마찬가지로 떳떳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불해야 마침내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이런 질문을 멈출 수 없다. 아시다시피 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