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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기적

아침마다 기적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6.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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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가남반석복지센터

멀쩡하게 자고 일어났는데 몸에 병이 생겼다. 여기저기 붓고 염증이 나는 걸 미련하게 진통제를 먹으며 견뎠다. 며칠 전까지 아침 알람소리에 잠을 깨고도 몇 분만 더 누워있고 싶어 꾀를 부렸던 일은 사치가 되었다. 아침이면 관절 마디마디가 아파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진통제를 먹어야 되니 힘을 짜내어 아침상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 마치 굉장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비장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고나서야 큰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류마티스라는 병이 내게로 왔다. 일단은 죽고 사는 병이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뭐든지 살살 할 수 밖에 없는 생활.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고, 병 뚜껑 하나 혼자서 따지 못하고, 일곱시만 되면 누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남편에게 맡기고, 회사에서도 몸을 쓰는 대신 머리와 입으로 일하는 신세가 되고 보니 비참함에 헛웃음이 자꾸 났다. 그야말로 노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느낌이니 기가 막힐 수 밖에.

나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이상한 병에 걸리고 나서야, 언제까지 내 몸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주변의 수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내가 일하는 곳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할 수 없는 노인들이 낮 동안 이용하시는 노인주간보호센터다. 기본적으로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이용하시지만 가끔은 그 보다 젊으신 분들도 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으로 오시곤 한다.

센터의 어르신 중 90세가 넘으신 분들이 여럿 계시다. 모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걷거나 화장실 출입이 어려운 분들이시다. 가만히 있어도 편치 않은 몸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하면 더 쑤시고 아파 신음소리를 내신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그 분들이 가장 생기 넘치는 순간은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하실 때다. 특별하지도 않고 어쩌면 지겹도록 고생만 하신 이야기인데 눈이 빛난다. 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장날마다 이십리나 되는 길을 오이며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다는 이야기들. 가난한 살림에 배를 곯고 일을 하다보면 밭고랑에서 하늘이 빙빙 돌더라던 슬픈 이야기조차 신명난다. 무조건 되돌아 갈 수 없는 젊은 날의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스스로 일어나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고, 도울 수 있던 그 시절이 아프고 나서야 기적 같은 시간이었음을 느끼신 것이다. 언제까지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던 자신의 몸이 늙음 앞에 꼼짝없이 항복하리라는 걸, 그 분들도 미처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부지런히 일해 돈을 모으라는 말보다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구경 실컷 하라신다. 늙고 나니, 아프고 보니 모아 놓은 돈도 소용없다며 적당히 일하고 예쁘게 살라고 당부하신다.

노인의 몸이 되었다면서도 아직 젊은 나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울컥 눈물이 나지만 돌아서면 어쨌든 일 할 궁리를 하게 된다. 아이를 키워야 하고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강할 때 세워 놓은 계획을 아직 수정하지 못하는 걸 보면 견딜만 하거나 깨달음이 덜 한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걷고 식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고 일하러 나올 수 있는 매일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행운이라는 것은 알겠다. 평생 약을 먹는 대신 날마다 기적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댓가라 생각 한 출근길, 오늘도 어제처럼 어르신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자리에 누워 근본적 생리현상까지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지독한 시간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주간보호센터를 찾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오늘이 어르신들께도 기적 같은 아침이라고, 그 굉장한 행복을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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