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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 - 자전거로 걷다-한강 1 (강원-골지천)

한국의 강 - 자전거로 걷다-한강 1 (강원-골지천)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8.13 12:48
  • 수정 2019.08.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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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혈청이 흐른다. 한강의 시원 골지천

■ 강둑길 여행을 시작하며

우리 산하의 주름 사이를 흘러가는 골짜기가 강입니다. 강물이 한 번쯤 허리띠를 풀고 머무는 곳에 강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사람이 가고, 물산이 오고, 사랑도 오고 이별도 갔습니다. 강마을 사람들의 저마다 사연과 눈물이 모여 모여 강물이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 여주는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복 받은 땅입니다. 한강을 사랑하고 아끼는 일은 여주에 사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한강의 발원과 종점까지 강둑길을 따라 자전거로 가는 느린 여행을 시작합니다.

 

검룡소에서 출발해 골짜기를 이루는 한강, 그 첫 번째 이름이 골지천이다. 

강원도 말로 골지가 곧 골짜기다. 

오대산 우통수와 발원의 내력을 다투면서도 민족의 강, 한강의 물줄기는 백두대간 태백·삼척의 골짜기를 굽이굽이 돈다. 

제법 물줄기를 이루던 강물이 갑자기 사라진다. 

물 한 방울이 없다니. 허옇게 드러낸 강바닥은 노란 들꽃들이 지천인 천상의 화원이 되었다. 

어디로 간 걸까. 한강이......

  ▲삼수령이 나누는 물길, 그 도도한 시발

새벽안개가 덜 걷힌 삼수령(三水嶺)에 올라선다. 태백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35번 국도의 고개다.

빗물의 운명이라는 것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 삼수령의 비문은 자못 비장하다. 북으로 가는 물은 민족의 수부(首府) 서울로 가는 한강이요, 남으로 가는 물은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되고, 나머지 물은 삼척 오십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 용왕님의 친구가 된다. 일반적으로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하나, 최장 발원지는 금대봉 북동에 위치한 고목샘과 제당궁샘 언저리다. 사람들은 최장발원지의 지리적 과학성보다는 역사적, 상징적 발원지라는 개념을 지켜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한강도 택리지에서부터 오대산 우통수(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서대사 경내의 샘)를 발원지로 하였다. 여름인데도 아침은 차다. 18도다. 강물의 흐름을 타고 가는 자전거는 우선 경쾌하다. 강 따라 길이 나다 보니 차도와 동행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7~8월에 먹게 될 고랭지배추를 파종하느라 골짜기마다 일손이 분주하다. 맞바람이 거세다. 삼수령에서 오르는 매봉산 자락에 ‘바람의 언덕’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풍력발전기가 커다란 날개를 돌리며 의장대처럼 나그네를 반기는구나. 골짜기를 거쳐, 더 한층 힘을 받은 태백의 바람은 동해 파도가 일군 바람을 바로 맞는 영덕의 풍차와는 다르다.

상사미와 하사미를 지나 귀네미골에 올 때까지 그런대로  물줄기를 이루던 강이 조탄마을에 들어서자 아예 바닥을 드러낸다. 물 한 방울 없다. 대체 강물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돌연 사라진 강물, 하사미골의 블랙홀

가물다고는 해도 명색이 한강 꼭대기인데 완전히 물이 마른 건천이라니 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어 볼 사람도 없는 마을, 표지석이 반긴다. ‘조탄마을’ 여울 탄(灘)을 쓰는 걸보면 이 마을도 물길 언저리인데....... 이내 커다란 저수지가 나타난다. ‘광동호’다. 태백·삼척·정선·평창까지 이 물을 쓴다는 광역상수도원이다. 이 호수의 아래가 삼척에서도 깊숙한 하장이다. 운전기사도 없이 배차시간을 기다리는 버스만 덩그러니 있는 차부(터미널이라고 도저히 할 수가 없다)에서  한 할아버지가 의문을 풀어주었다. “태백에서 내려오던 강물이 귀네미골을 지나면 땅속으로 스며들지요. 이곳은 석회암지대라 그 물이 환선굴 쪽으로 다 빠져나가요. 장마나 져야 광동댐으로 모이지.” 그랬구나. 할아버지는 광동댐을 막을 당시의 일화를 들려준다. “댐을 막을 때, 아마 정우건설인가 거기서 했지. 그때 90살 가까이 된 노인 한 분이 말했데요. 옛날부터 전해오던 말인데 어느 핸가 장마가 크게 졌는데 이쪽에 많이 심던 대마 밭이 쓸려 나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환선굴 아래쪽에 대마씨가 꽃을 피웠다고 하더라고......그래서 공사하는 사람들이 강물에 염료를 몇 드럼인가 타서 흘려보내 봤는데 환선굴 쪽에 있는 여러 동굴로 역시 물이 흘러 나왔다는 거야.”

땅속으로 스민 물이 삼척 대이리 동굴지구로 복류했다가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룡소에서 발원하는 한강물은 장마 때나 수량이 많을 때가 아니면 삼척오십천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그러니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한강의 발원을 기세 좋은 오대천의 풍부한 수량으로 잡은 것은 어쩌면 선견지명인지도 모르겠다. 강의 길이가 GPS와 과학적 실측으로 몇 십 km 더 늘어나는 것보다 뚜렷한 물줄기를 중심으로 상징적 발원을 삼는 연유가 있겠다.

1989년도 어느 여름날 기억이다. 막 지프를 처음 산 나는 임계를 거쳐 비포장 길로 하장에 들어섰다. 사람 키보다 훨씬 웃자란 대마 밭이 터널처럼 도열한 채 맞아 주었다. 대마초를 피우던 사람들은 대마 잎을 훑어가기 위해 직접 이 산골까지 몰래 숨어들어 경찰과 숨바꼭질을 했단다. 하장의 다방전화 번호는 기억도 선명한 두 자리였다. 들기만 하면 교환수가 나오는 공전식 전화기엔 계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와 쌍화차 주문이 이어졌다. 심심한 지서와 예비군중대로 배달 온 레지 김양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색깔 짙은 농담에 끼어들었겠지.

대낮에도 인적이 뜸한 하장면 소재지는 이젠 사람이 줄어 5일장도 서지 않는다. 서울서부터 시골 장마당을 따라 내려온 옷장수는 승합차에 짝퉁 등산복을 걸어놓고 손님을 맞았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은 시원한 지지미 천 윗도리를 고르고는 돈을 좀 있다가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런 옷 장사, 30년 철 지난 장사라요. 죽지 못해 하는 거지. 기름을 길바닥에 깔고 나면 남는 게 뭐 있어야지.” 그는 시대를 IMF 전과 후로 구분한다. 다들 잘 극복했다고는 해도 폭삭 망한 아픔의 기억은 질기게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댓재’터널을 빠른 시간 내에 뚫겠다는 삼척시장 후보의 지방선거 현수막이 심드렁하게 펄럭거린다.

  ▲백두대간의 쉼터 같은 마을, 임계

하장에서 임계로 나오는 20여 km의 길은 여전히 용틀임하는 골지천을 따라간다. 천연기념물272호인 갈전리 당숲에는 300년 전 심은 엄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가 세월만큼 우거져서 눈을 잡아끈다. 백두대간의 청옥산(1,404m), 중봉(1,259m)의 골짜기가 품고 있던 소나무는 골지천을 따라 흘러 조선조 궁궐의 대들보가 되기도 했다. 명종8년(1553년), 고종2년(1865년)에 불탄 경복궁 중건 때 일이다. 최근 복원된 숭례문의 대들보도 삼척 척준경 묘에서 나왔으니 가히 삼척이 백두대간의 대들보라 할만하다. 문래리를 지나면 월탄마을인데 골지천이 심하게 요통 치며 방향을 바꾸는 구간이기도 하다. ‘달탄길’이란 새 주소가 붙여져 있다. 한글로 순화한다고 달 ‘월(月)’자를 ‘달’로 바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탄(灘)은 그대로 붙여 어정쩡한 지명이 되고 말았다. 그대로 월탄길로 두든지 아니면 ‘여울 탄’까지 한글로 바꿔 ‘달여울길’로 했더라면 더욱 운치 있는 이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임계에 못미처에서 골지천은 서쪽으로 90도 방향을 튼다. 왕산 대기리 삽당령쪽에서 내려오는 송현천과 동해로 넘어가는 백복령에서 내려오는 임계천의 물을 합하여 물줄기의 기세가 갈수기인데도 제법 푸른 기운을 띤다.

임계는 그런 물길의 합류점 둔전에 자리 잡은 해묵은 마을이다. 그 옛날 목상들의 번성도 이 마을까지는 못 미치고 대개 진부쯤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젠 고랭지채소밭에는 배추 잎을 닮은 돈이 돌아 마을을 살찌게 했다. 태백에서 100리가 넘는 길이니 요기를 하는 게 맞지만 갈 길이 바쁘면 바로 좌회전이다.

  ▲2차원의 구절양장, 골지천의 정수

사실 골지천의 정수는 송계교부터다. 몸 풀기도 채 하기 전에 골짜기가 휘 감돈다. 골지천 산소길44km의 시작이다. 아우라지가 중간이고, 2개 구간으로 나누어 정선장터까지 간다. 지도를 들여다봐도 골짜기 100리 용틀임, 그 절정이 이제 시작이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말하는 구절양장이 3D라면, 뱀이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지나가는 사행(蛇行)의 골짜기는 2D다. 오래전 백복령, 삽당령 고개를 비포장으로 넘을 땐 골지천 골짜기를 들어설 엄두를 못 냈다. 그건 우선 지도만 봐도 비포장길은 구미정 근처에서 끊기고, 꼬불탕거리는 물길에 지레 겁을 먹었다. 막 산에서 당귀잎사귀와 더덕, 취나물을 한 배낭 뜯어 온 중년들이 길섶에서 닭을 삶고 있다. 토박이가 2002년 태풍 루사에 휩쓸린 골짜기의 참상을 들려준다. 그 후 시멘트포장길이 산허리로 올라 붙어버렸다. 큰비에는 물에 잠기는 잠수도로로 복구했더라면 오히려 이 계곡과 어울리는 또 다른 명소가 되지 않았을까. 나그네의 눈높이와 물길의 허리춤이 엇비슷할 때 모태하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다시 찾고 싶은 게 아닐까. 하기야 이 골짜기의 사람들의 생존은 어떡하고 그런 한가한 흰소리나 하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골지천의 방점, 열여덟 가지 풍경 구미정

한 구비 돌자, 구미정(九美亭)이 강가 벼랑 위에서 손짓한다. 이 호젓한 골지천의 방점이니  지나친다면 예의가 아니다. 조선조 숙종 때 공조참의 수고당 이 자 선생이 은거 휴양하던 곳이다. 여느 정자와 달리 뽐을 내며 팔각지붕을 얹은 것도 아니다. 방 두 칸 마루 하나, 그저 풍경과 세월을 함께 녹이는 겸손이 배어있다. ‘9美18景’을 한시로 현액(懸額)해 놓았으나, 한자만 보면 가슴이 답답한 세대를 위하여 풀어쓰면 이렇다. 「밭두둑이 보이는 전원풍경,  평평한 반석과 층암을 이룬 절벽, 바위 위에 생긴 작은 연못과 넓고 넓은 큰 바위, 석벽사이로 보이는 쉼터, 돌마다 생긴 구멍」은 선경(仙境)의 회화적 서술이다. 「떨어지는 폭포에 통발을 걸고 하는 천렵의 한가함과 정자에 불을 밝히니 연못에 일렁이는 등불의 그림자가 아름답다」고 꼽는 것은 음풍농월하는 세월 속에서 발견한 감동일 것이다. 구미정의 아름다움이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길목의 나무 하나가 붙잡는다. 서로 엉켜 한 몸이 되면서도 따로 자라는 ‘연리지’ 나무는 사랑의 서원을 이루어 준다하니 사랑살이가 시원찮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멈춰선 발걸음이 아까울 게 없다. 반천리에 들어서면 거대한 성채가 강물과 마을을 감싼다. 반천산성이다. 길이로 따지면 5km의 산줄기가 전부다. 산꼭대기 성은 일부러 쌓은 흔적이라기보다 암벽을 깎아 산 아래를 감시하기 좋게 만든 망루의 역할이었을 수도 있겠다. 산 아래 물길이 550m의 표고이고, 반천산성이 700m다. 줄잡아도 절벽이 100m가 넘으니 아래서 쳐다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산성에 올라선 사람들이 저마다 골지천 최고의 경관을 조감할 수 있다하나 자전거나그네는 그저 막연히 상상할 뿐이다. 아우라지까지의 50리길은 그저 심심할 새가 없다. 한 구비 돌면 또 한 구비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봉정리의 정선소수력발전소를 지날 때야 보를 넘어서는 가는 물길에서 심한 가뭄을 다시 확인한다. 이런 골짜기라면 용이든 이무기든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암녹색 소(沼)를 자주 만나야 할 텐데 말이다.

▲정선 아우라지, 너무 분칠을 하다

여량은 아우라지로 변해 있었다. 기차역도 그렇고, 마을 전체도 그렇다. 황병산, 그러니까 삼양목장쯤에서 내려오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져 두물머리가 된다는 내력의 ‘아우라지’는 북적거리는 장터가 되어 있었다. 관광버스 서너 대가 그랬고, 아우라지역(옛 여량역)에 들어와 시동을 끄지 않고 있는 정선장날 열차가 아우라지로 길손들을 실어 왔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말하는 정선 땅 아우라지는 그의 인문지리적 서술이 딱 들어맞는다.

<임계 서쪽에 있는 산기슭 남쪽이 정선 여량촌(餘糧村)인데 우통물(송천)이 북쪽에서 여량촌을 들러 남쪽으로 흘러간다. 양쪽 언덕이 제법 넓고, 언덕 위에 키 큰 소나무와 흰 모래가 맑은 물결을 가리고 비치니 참으로 은자(隱者)가 살만한 곳이다. 다만 전지(田地)가 없는 것이 한스러우나 마을 백성은 모두 자급자족한다.>

 이런 말에 연유한 것일까. 여량(餘糧)은 ‘넉넉한 양식’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밭뙈기도 부족한 이 산골에서 무엇으로 자급자족한단 말인가. 연대기적 서술이라면 뗏목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 뗏목의 배차는 여기서 이루어진다. 한 두 바닥 대강 엮은 소나무들이 강릉 쪽에서는 송천으로, 태백·삼척 쪽에서는 골지천으로 떠내려 와서 이 아우라지에서 대규모 뗏목수송단을 만든다. 천리 머나먼 한양까지의 물길에 목숨마저 걸어야하니 떼꾼들의 못 지킨 약속도 강물에 함께 떠내려갔을 게다. 그나마 산비탈에 밭 일구고 사는 목숨보다야 목돈도 만졌을 테니 객주도 흥청거리고, 떼꾼들의 호기 또한 골짜기에 가득했겠다. 그래서 ‘떼돈’이라는 말이 생겼다지 않는가. 뗏목시절이 구한말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 끝이 났다면, 아우라지에 돈가뭄을 풀어준 구절리 우전탄좌의 탄광도 한시절로 끝났다. 석탄 실어 나르던 레일위로 ‘레일바이크’가 구르면서 여전히 타관의 돈들이 들어오니 ‘넉넉한 양식, 여량’이란 이름값은 하는 게 아닐까.

못 다한 사랑과 이별만큼 흔하고도 애절한 테마가 어디 있을까. 떼꾼 사내와의 사랑을 죽어서도 기다리는 처녀상이 아우라지의 원혼이고, 나와 친분이 있던 정공채 시인이 쓰고 변훈이 작곡한 가곡 ‘아우라지’는 진혼곡이다. 오래 전 고인이 되신 두 분은 연배는 달리 하나 ‘연세대 정치외교과’ 출신의 시인이고, 외교관이란 독특한 인연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과 글이 샘나게도 빼어난 ‘김병종’이 노래한 아우라지의 서정은 이제 그 시절 뗏목처럼 떠내려가고 없는 풍경이다.

<아우라지 강에는 흐르는 강물에 눈길을 보태지 말라 했던가.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랑도 인연도 우리네 인생마저도 결국엔 저렇게 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쓸쓸해지기 때문이라 한다.(중략) 강 건너 산가에 불빛이 깜박인다.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본다. 어느새 와르르 쏟아질 듯한 별무리, 한을 노래로 바꾸어 불러온 이름 없는 얼굴들이 별 되어 떠 있다.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다. 정선에 누워 나는 물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

아무리 서늘한 가을밤을 연상해도, 세련된 도회풍의 붕어빵식 간판과 막 개장을 앞둔 주례장터의 건물들은 이 서술에 쉬이 동의할 수 없게 만든다. 아우라지의 브랜드는 주막거리 작부의 들뜬 분칠 같다. 퇴영의 목덜미가 그립고, 옛것에 목말라하는 나의 성정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일까.

▲골지천, 아라리 가락에 허물 벗고 조양강으로 

줄을 잡아끄는 배로 강을 건너는 관광객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국도 42호선에 올라탄다. 좁은 골짜기에 강과 도로가 함께 가니 강둑이 들어 설 여지가 없는 게 당연하다. 골지천 허물을 벗고 햇빛이 드니 조양강이다.

나전 북평교를 건너면 남평리다. 강이 가른 남과 북이 제법 너른 벌이다. 북평면소재지가 한때 남평리에 있을 정도로 흥청거렸던 나전나루는 사라졌다. 장열나루, 북풍나루, 종산나루도 사라졌다. 뗏목의 긴 행렬만큼이나 정선아라리는 한양으로까지 흘러들었다. 아리랑의 족보에는 늦게 가세한 셈이다. 천 여곡이라던 아리랑이 그 연구에 생을 바치는 분들 덕에 3,000여 수로 불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정선아리랑은 노동요의 정점에서 신나게 부를 수는 없는 독백조다. 산과 물로 첩첩히 둘러싸인 정선 땅에서 그래도 살아야하는 탄식이 절망의 비탄으로 가지 않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아라리의 느리고도 비감한 곡조는 말을 바꾸면 뭐든 노래가 되었다. 장보러 간 서방이 객주 집을 서성거리는 것도, 군대 간, 생때같은 아들이 한줌 재로 돌아온 참척의 고통도 ‘38선 아리랑’의 가사로 피 대신 토해내는 게 우리 민족의 아리랑이다. 하춘화가 그 굵다란 눈을 번쩍 뜨고 부르는 ‘강원도아리랑’도 좋지만 김옥심 명창이 서러운 목청으로 가늘게 뽑는 ‘정선 아라리’가 내 가슴엔 더 절절하다.

산 그림자가 강물 위에 길게 누워 흐른다. 북평면 문곡리 한반도를 닮은 마을, 강물이 180도 요동칠 때 마다 생겨나는 게 한반도 꼴이다. 김삿갓에 재미를 본 영월이 한반도마저 시골 면 스토리텔링에 편입시키며 경쟁을 촉발했다.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한반도를 더 닮은 것은 병방치 스카이워크도 아니고 정선 문곡리 것이 더 근사하고 살도 통통하다. 장날에나 기차가 다니는 정선선 내반철교를 건너서 바로 정선읍내로 가고 싶은 유혹을 참고 적거리 고개에 올라서니 읍내가 바로 발아래다.

/조용연 여주신문 주필 

 

 

 

 

 

 

 

 

■ 여행정보

□ 골지천 라이딩구간 - 7시간 소요(쉬엄쉬엄 10시간)  

 태백 검룡소 주차장-정선제1교(96km) / 태백검룡소주차장→안창죽(5km)→광동호(21km)→하장(23km)→송계교(47km)→아우라지(71km)→정선제1교(96km)

□ 골지천

총 길이: 103.28km(유역면적973.02㎢)   

등급: 지방하천(강원 태백시 상사미동- 정선군 북평면 오대천 합류점) / 지천: 임계천, 송천 등 6개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검룡소에서 발원하는 강물이 안창죽 마을을 거치면서 골지천의 상류를 이룬다. 

( 한국하천일람.2012. 12.31. 국토교통부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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