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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8.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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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끝끝내 부를 이름이 없네

장주식 작가

경기도에서 올해부터 청년배당금을 주기 시작합니다. 1년에 4번 25만원씩 총 100만원을 지급합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1994년 1월 2일부터 1995년 1월 1일 사이에 태어난 만 24세 청년이고 경기도내에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계속 거주한 청년이라야 합니다. 수당은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수혜자가 사는 시군지역에서만 사용가능하도록 합니다.

이 정책은 논란이 많은데요. 대표적인 비판은 ‘퍼주기’라는 겁니다. 노동을 한다든지 구직을 위해 노력한다든지 사회적으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데 왜 돈을 주느냐는 겁니다.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청년이 수당을 받고도 노동, 구직활동, 사회적 기여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돈이 아까워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믿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수당을 줬는데도 노동을 안하고 구직활동도 안하고 어떤 사회적인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믿고 기다려 주면 청년은 스스로 일어나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비판도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수당을 주면 술이나 담배를 사 먹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비용으로 탕진해 버릴 거라고요. 당연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청년이 유흥비로 탕진하지는 않을 겁니다.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돈을 쓰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꼭 필요했지만 사지 못했던 ‘무언가’를 사는데 쓰기도 할 겁니다. 생활을 바꾸기에는 몹시 적은 돈이지만, 100만원만큼의 ‘자유’가 생길 겁니다. 자유는 아주 작은 것이어도 그만큼의 숨 쉴 공간이 생기는 것이죠.

노자는 말합니다. 도는 만물이 의지하여 살아가지만 끝끝내 만물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죠. 도는 또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이란 ‘간섭’을 뜻합니다. 위의 청년배당 비판자들이 다양하게 제시하는 ‘조건-노동유무, 구직활동 유무, 사회적 기여 유무 등등’이 곧 간섭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급여’는 대부분 조건이 있습니다. 재산과 소득을 조사하여 기초연금을 주고,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실업수당을 줍니다. 조건이 있으면 대상자는 조건에 맞추기 위하여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공무원은 서류를 심사해야 합니다. 서류준비, 심사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비용만 줄여도 상당한 재원이 마련됩니다.

조건이 더욱 괴로운 것은 조건을 준비하는 당사자가 커다란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무상급식이 보편화되기 전 선별하여 급식비를 면제 할 때 일입니다. 집안에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어 무상급식 대상자가 되는 아이는 서류를 준비해서 내야했습니다. 그 서류는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해요’라고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대상자 부모는 굴욕감에 신청 안하는 경우도 있고 5,6학년 고학년은 수치심에 부모가 준 서류를 담임교사에게 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무상급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선별하여 서류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학생, 교사, 학부모가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우리가 가진 경제력으로 학교 무상급식은 충분하고도 여유가 있습니다. 이 무상급식이 곧 요즘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본소득이 갖고 있는 요소를 잘 갖췄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이 갖고 있는 요소는 5가지입니다. 개인에게 주며, 정기적이며, 무조건이며, 보편적이며, 현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학교 무상급식은 이 조건들에 충실합니다. 다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급식을 하는 것이 다를 뿐이죠. 올해부터는 아동수당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동수당도 기본소득의 요소들을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무상급식과 아동수당이 시행되는 우리 사회를 보면 가슴 부푼 희망을 갖게 됩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가 실천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니까요.

만물을 입히고 기르면서도 스스로 주인이라 하지 않고, 만물이 자기에게 다 돌아와도 스스로 주인이 되지 않는 도. 드넓어 그 은택이 사방에 두루 미치는 도. 이 추상적인 도가 현실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무상급식이나 아동수당 같은 것이니까요.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는 그런 ‘위대함’으로 말이죠.

<노자 도덕경 34장 : 大道氾兮(대도범혜)여 其可左右(기가좌우)로다. 萬物恃之而生而不辭(만물시지이생이불사)하고 功成不名有(공성불명유)하며 衣養萬物而不爲主(의양만물이불위주)하노라. 常無欲(상무욕)하니 可名於小(가명어소)하고 萬物歸焉(만물귀언)이나 而不爲主(이불위주)하니 可名爲大(가명위대)하노라. 以其終不自爲大(이기종부자위대)하니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라.>

큰 도는 흘러넘쳐 왼쪽 오른쪽 사방에 다 있다. 만물이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지만 아무런 말이 없고 공을 이루어도 갖지 않으니 이름 지어 부를게 없다. 만물을 입히고 길러도 주인이 되지 않아 늘 그렇게 무욕이라 드러나지 않으니 아주 작아 보이며, 마침내 만물이 다 돌아오지만 역시 주인이 되지 않으니 아주 크다고 부를 수도 있구나. 하지만 끝끝내 스스로 크다고 하지 않으므로 진정 크게 이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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