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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40. 고양이 뒹굴다람이

기사승인 2019.10.01  1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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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우리 집에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고양이가 내 발밑에 누워 뒹굴뒹굴 하더군요. 목과 배에 하얀 털을 다 드러내며 완전 무방비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다 내가 걷기 시작하면 “앵 앵 앵”소리를 내며 따라와요. 그 소리가 얼마나 가냘프고 애잔한지요.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려면 좀 억울한 마음으로 소리를 내야 해.”

 

누군가 이런 말을 했는데 딱 맞는 말입니다. 뭔가 억울해서 내는 울음소리 같은 거요. 가냘프고 억울하고 게다가 배를 드러내며 뒹굴어대니 나는 그만 먹을 것을 주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린 거죠.

이 고양이는 다람쥐 줄무늬를 가진데다 자꾸 뒹굴어서 내가 이름을 ‘뒹굴다람이’라고 지었답니다. 그런데 늘 약해 보이기만 하던 다람이가 어느 날, 아주 거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멧비둘기를 잡은 겁니다. 푸드덕거리는 비둘기 털을 뽑아내고 살점을 뜯어먹더군요. 입가에 피 칠을 하면서 말이죠. 안방 바로 앞 화단에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와 나는 창밖으로 그 장면을 보면서 창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숨까지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내 발밑에 누워 그토록 연약한 모습을 보이던 다람이가 몹시 사나워 보였습니다.

 

‘맹수가 틀림없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그 사나운 장면을 보고 나자 약간 정이 떨어지는 겁니다. 다람이가 먹고 남긴 비둘기 잔해를 치우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내가 마당에 나갔을 때 역시 다람이가 앵앵거리며 쫓아와 내 발밑에 뒹굴었지만 난 못 본 척 했습니다. 몇 번 뒹굴다가 가만히 엎드려 나를 지켜보던 다람이는 어슬렁거리며 다른 데로 가버리더군요.

 

고양이는 자기 타고난 생태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거리를 두고 안 두고는 인간인 내가 보인 태도인 것이고요. 다만 내 앞에 연약한 모습으로 고양이가 다가왔을 땐 나도 손을 내밀어 턱을 쓰다듬는다던지 앞발을 마주 잡는다던가 했습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함은 도의 쓰임이 된다.”

 

약하다는 건 부드러움도 됩니다. 약함의 상대편에는 강함이 있고 부드러움의 상대편에는 거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칠고 강함은 도가 좋아하지 않는 ‘불용’이 되겠군요. 다른 말로 하면, 도는 연약함 속에 나타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양이 뒹굴다람이가 내 앞에서 앵앵거리고 뒹굴어대는 연약함 모습을 보일 때 뭔가 ‘도의 쓰임’이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고양이 행동을 ‘아부 떤다.’고 경멸할 수도 있습니다.

 

멧비둘기를 잡아먹는 건 사납고 거칠어 보이지만 어쩌면 당당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뭔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발밑에 누워 뒹굴며 앵앵거리는 모습은 부드럽지만 어쩌면 비굴해보이기도 합니다. 두 모습 다 뒹굴다람이가 가진 특성들입니다. 하지만 다람이가 나와 같은 인간과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선 어떤 특성을 사용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무위자연’입니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그런 것. 이 자연스러운 도가 세상에 충만해 지려면 강함보다는 연약함을 써야 된다는 것이죠. 물론 도가 제대로 쓰이려면 끊임없이 ‘근본으로 되돌아감’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반(反)이라는 것은 돌이켜 본다는 것입니다. 돌아올 줄 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뭔가를 이루기 위해 멀리 나아가지만 끝내는 돌아올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행동이 과연 ‘자연스러운가?’하고 자꾸 돌이켜 보는 것, 그럴 때 도는 움직이고 제대로 쓰임을 갖는 다는 것이니까요.

 

<노자 도덕경 40장 : 反者(반자)는 道之動(도지동)이요 弱者(약자)는 道之用(도지용)이라. 天下萬物(천하만물)은 生於有(생어유)하고 有(유)는 生於無(생어무)하나니라.>

 

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요, 약함은 도의 쓰임이라. 세상 만물은 ‘있음’에서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난다.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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