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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 한강5(양평·남양주·하남·서울)①

한국의 강- 한강5(양평·남양주·하남·서울)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 작가
  • 입력 2019.10.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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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의 봄, 두물머리에서 머리 풀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두물머리 ‘팔당호’에서 비로소 몸을 합친다. 물기운 가득한 양평은 1981년 영하 32.8도라는 기록을 남겼다. 본시 양평은 땅뙈기 귀한 산촌이었다. 산협 언저리에 빼곡히 들어선, 서울 사람들의 별장과 은퇴 주택은 배산임수의 가치를 나날이 더해간다. 하루면 마포나루까지 가던 뱃길이 끊어진 지도 오래다. 그 길로 중앙선 기차가 수도 서울과 국토 심장 사이의 물류를 이어주느라 분주하다. 세월이 하 수상해서 그런가. 이 봄볕에도 올림픽대교의 성화 조형과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연무(煙霧) 속에 아득하기만 하다.

 

유난히 춥던 소읍, 양평은 따뜻하다

양평대교에서 강둑으로 난 우회도로는 강바닥에서 보면 높다랗게 지나간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던 읍내를 양근제방을 높이 쌓아 올려 보호한 성벽이 강둑길이다. 천천히 안장에 오른다. 삼월 중순에도 자전거 장갑 손가락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이 춥다. ‘시월에 언 물이 4월에 녹는다.’는 양평의 추위가 조금은 유효하다. 양근(陽根)과 지평(砥平)을 합해 양평이 된 소읍은 여주마저 2013년 시로 승격해, 이제 경기 남부권에서 유일하게 남은 군(郡)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농토라고는 16%에 불과한 산촌이었다. 동서로 길게 드러누워 있어 양수리 언저리와 지평 일대에나 논이 조금 붙어있을 뿐이다. 개군면이라도 여주가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논 구경하기 어려운 고장이었다. 쌀로 돈을 가늠하던 시대가 바뀌고 보니 양평 몸값은 외려 솔솔 올랐다. 이 상승세는 여전히 진행형이어서 여주시의 인구를 추월했다. 팔당댐을 막아 툭하면 물난리로 고생하고, 냉해를 입던 양평이 ‘상수원보호구역’, ‘수변구역과 특별제한1권역’이라는 엄격한 개발제한의 잣대 속에 오히려 청정자연으로 다시 태어났다. ‘먹고 살 만한 시대’가 되면서, 어디 한 곳 하소연조차 못 하던 처지가 도리어 다투듯 살아가다 지친 서울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양근대교 모퉁이에서 만나는 양평군립미술관이 그 한 예다. 여느 시골 소읍에서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미술 기획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곳이 양평이다. 군 단위의 예총 지부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도 서울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수려한 물줄기 그 골짜기마다 둥지를 튼 예인(藝人)들에서 나온다.  

양평을 천천히 가는 법, 무조건 강가로

사람들은 팔당에서 자전거를 타면 중앙선 폐철도 부지 위에 만든 국토종주자전기길 위의 양평만 생각한다. 그런 30여km는 때로 너무 밋밋하다. 무조건 강변으로 붙어보라. 좁은 단선 철로 부지 위에 교행하는 자전거길과 산책로까지 만들어 옹색한 주로(走路)를 벗어난다. 한적한 강변 풍경을 내 안에 넣을 수 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 후문 앞으로 난 자전거길은 큰솔노인요양병원을 지나 만나는 소공원에서 끝난다. 막 새로 낸 비포장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강 건너 스페인하우스의 물그림자를 감싸 안은 강 안개는 슬픈 침잠(沈潛)의 청회색이다. 아득히 눈에 담고 갈 수 있어 그 고요가 차라리 행복하다. 그것도 잠시다. 대심2리로 내려선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양지바른 강변 땅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집을 새로 짓거나 축대를 올려 쌓느라 새봄이 분주하다.

익숙한 이름 <예마당>이 물가에 여전하다. 얼마나 많은 서울 아낙들이 경양식을 먹고, 차 한 잔 앞에 두고 수다를 떨며 통기타 반주 라이브를 즐겼던 명소인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더니만 노래 부르는 주인장 목소리도 영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도 들린다. 큰길로 나오면 국수리다. 한자가 다르면 어떠랴. <국수리국수집>은 성업 중인지 모르겠다. 강 따라 절경을 선사하던 중앙선도 국수역에 다다르면 마을 안쪽으로 물러앉는다. 따뜻한 주말이면 색소폰 풍각쟁이들이 역 앞마당에다 ‘도롯도 한판’을 벌여 나들이 나온 사람들 신명을 불러 세우는 낭만도 있다.

양서초등학교에서 자전거전용로로 올라선다.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신원역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구한말 이곳에서 태어났다. 2011년 건립된 기념관의 운영 주체를 두고 생가 마을 주민과 기념사업회 사이의 갈등은 플래카드를 내걸기에 이르렀다. 좌우합작을 주창했던 독립운동가의 뜻을 생각한다면 분쟁은 볼썽사나운 소란이다.

세미원은 두물머리의 여백

새우등을 한 채 지나가는 싸이클의 유선형 대열이 길다. 자전거의 질주 본능은 ‘빨리빨리 시대’와 잘 어울린다. 질주의 바람 소리에 놀라 노견으로 밀려난다. 이 절대의 자전거 공간에서 마저도 느린 자전거여행자는 약자다. 양수역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흙길로 내려선다. <세미원>은 ‘두물머리’의 여백이다. 병탄(竝灘)으로 불리던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이 태백에서 장도에 오른 남한강과 머리를 풀어 첫날밤을 보내는, 삼개나루(마포)행 물산의 마지막 나루터다. 세미원은 팔당호가 거대한 호수로 변하면서 수면과 거의 평형을 이루는 물가에 세한도의 힘찬 기상과 연밭의 맑은 기운을 함께 엮어 놓았다. 연꽃이 피는 6월 하순도 좋고, 물안개의 서정에 젖을 수 있는 비 오는 날도 좋다. 굳이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북한강철교 자전거길을 마다하고 내려선 이유다. 팔당역을 직선으로 이어주는 중앙선 복선은 예봉산 아래에 운길산역을 만들고 북한강에 새 다리를 놓았다. 철거를 놓고 고민거리 던 옛 철교가 전대미문의 자전거전용철교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땀을 식혀주는 터널을 잇달아 빠져나와 강바람을 가로질러 가는 자전거 행렬은 또 얼마나 장쾌한가. 해마다 이 길을 찾아온다는 일본 단체 라이딩 손님들의 끝없는 찬사는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그저 자전거만이 아니다. 풍경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운길산 수종사를 일부러 오르는 이유도 드넓은 팔당호에서 얼싸안는 두 한강의 정념과 그 품에 안겨있는 두물머리의 풍정(風情)을 함께 담기 위해서다. 낙조가 강물 위를 온통 물들이면 그 황금비늘은 멀리서 헤아릴 수 없는 주사선으로 변환되어 한 폭의 영상이 된다.

자전거로 부활하는, 박제된 능내역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거나, 추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한 현실이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양수대교를 건너기 직전, 어저께 불이 난 현장을 지나간다. ‘애견센터’다. 사랑받던 강아지들은 불길을 피했을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까. 현장을 확인하는 소방관들이 질척거리는 잔해들 사이에서 부산했다. 울타리 하나를 하나 사이에 두고 보신탕집 간판이다. 먹을 수 있는 개와 먹을 수 없을 개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장은 견고하다. 내가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유는 뜻밖에도 간명하다. “개가 어쩌면 전생에 너의 조상이었을지도 몰라.”라고 오래전 들었던 한 마디 때문이다. 인생이 축생(畜生)이 되고, 축생이 인생도 될 수도 있다는 이 연기(緣起)의 반전에 핏줄의 공포까지 가세하였으니 말이다.

북한강을 건너며 이내 그건 미생이전(未生以前)의 일 인양 잊어버린다. 진중사거리를 좌로 돌며 자전거전용로로 복귀한다. 긴 겨울로부터 용수철처럼 튕겨 나온 자전거의 질주, 인간은 원래 군무를 좋아하는 걸까. 독주와 군무 사이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독주는 무반주의 자유이나 군무는 행진곡풍 결박이다. 스스로 결박한 우리가 되어, 결코 앞 설 수 없는 뒷바퀴의 힘으로 맞바람을 밀어낸다. 가창오리 떼만큼은 아니더라도 수 없는 군무의 바퀴는 봄을 일깨우고 지나간다.

간이역 시절, 통근열차가 서면 두어 사람 타고 내리던 능내역은 이제 팔당~양수 간의 자전거 중간 기착지가 되어 붐빈다. 능내역사는 박제되었고, 역전식당은 추억의 힘으로 생겨났다. 이제는 불법이 되었다 해도 산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만큼이나 땀이 동반하는 한 잔의 목축임은 강한 유혹이다. 뻐근한 넓적다리를 위로하는 시간이다. 누가 썼을까. 목판에 새긴 시 한 수가  자전거와 인생을 동반자라 말한다.

흔들흔들 아슬아슬 비틀거리며/ 함께한 시작이 아득하여라/ 나의 몸에 그 기억근육이 쌓여/ 익숙해지니 넌 언제고 나를 싣고/ 세상을 가르는 바람이구나/ 밀어내며 함께한 시간 속에 생채기/ 보듬고 견디어 내는 나의 물빛 자전거 (‘자전거’ 작자미상)

이순신과 강감찬만큼이나 역사책에서 자주 걸어 나오는 인물이 정약용이다. 다산을 입에 올리면 목민을 실천하는 것처럼 떠벌리는 관료와 정치인, 그들이 조상 다음으로 모셔야 할 정약용의 생가와 묘소가 산 너머 마제고개 아래에 있다. 실학박물관도 거기에 있다. 18세기 천주학의 깊은 뿌리가 강상면의 안동 권씨 5인인 권철신, 일신, 제신, 득신, 익신 과 정약용, 약종, 약전 3형제에 박혀있다. 천진암과 남한산성 또한 한강의 언저리에서 천주학의 지리적 근접을 말해준다.

능내역에서 느슨하게 당긴 활처럼 구부러져 터널로 들어가는 자전거길은 팔당~양평 구간의 백미다. 더구나 벚꽃이 활짝 필 때 천주교소화묘원에 올라서 보면 외줄기 옛 철길은 팔당호반과 어우러져 더 없는 절경을 이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몰래 묘소에 올라와 꽃 한 다발 바치고 통곡하는 서글픈 인생의 단골 장면, 그 배경이 바로 여기다.

□한강(양평-중랑천 합류구간의 지류하천)
-국가하천: 북한강, 경안천, 중랑천(제1지류)
-지방하천: 양근천, 성덕천, 복포천, 덕풍천, 홍릉천, 왕숙천, 고덕천, 성내천, 탄천 등 제1지류 44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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