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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신문을 안 보는 시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여강여담- 신문을 안 보는 시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19.11.1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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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빠져버린 눈, 버스에 비치된 무료 일간지도 안 읽는 시대

지역신문은 ‘비판과 온기’가 함께 담긴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가야 

조용연 주필

신문을 안 읽는 세월이다. 이 말은 수도권에서 서울 시내로 직행하는 광역급행버스의 출근 풍경에서 실감 난다. 출입구에 놓인 유력 일간지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어도 나이든 승객이나 겨우 한두 부 빼어갈 뿐 몇 왕복을 하고도 그대로 남는다.

저마다 휴대폰 화면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재빨리 넘기는 화면 위 손동작이 분주하다. 깊은 생각이 머물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실시간 검색 우선순위는 팔랑개비처럼 가볍게 요동친다.

이제 여주신문에 합류한 지 백일도 되지 않아 ‘24주년 창간 기념일’을 맞았다.

활자 매체의 위기가 지역신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용케도 ‘여주신문’의 짧지 않은 세월을 지켜온 분들의 노고를 십분 공감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다시 고민해 본다.

신문의 기능은 우선은 ‘비판이다. 비판은 세상이 바르게 가지 않는 데 대해 채찍을 드는 일이다. 지역신문의 포커스는 그 지역의 생활 언저리에 촘촘하게 맞춰진다.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시각을 고정하면 누구의 공감대도 얻지 못한다. 말로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고 하면서 특정의 이해를 염두에 둔 곡필을 휘두르면 이즈음 말로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면서도 막연히 ‘대책이 절실하다’고 책임을 떠민다면 무책임하다. 적어도 개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 정도는 되어야 공감을 얻는다.

때로는 큰 그림의 비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든다면 “지방정부가 못 쓰고 남은 돈이 올해 69조 원”이라는 기사가 팩트라면 이미 시대가 국가의 재정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겨주는 예산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이렇게 돈이 남아도는가. 세수와 예산은 그해에 ‘쓸 만큼 거두고, 거둔 만큼 다 써야’ 하는 원칙이 있다. ‘잉여’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건 재정 계획을 잘못했거나 집행을 잘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 고장은 그럼 과연 예산이 얼마나 남아도는가? 모자라는가? 남아도는 원인은 무엇인가? 공무원의 나태나 비겁함 때문인가? 감사의 경직된 잣대 때문인가? 의미 있게 우리 고장에서 써야 할 명분과 실익이 담긴 프로젝트 개발에 실패했거나 소홀함 때문은 아닌가 성찰이 필요하다. 남는 돈을 ‘어떡하든 다 써버린다’는 낭비의 개념과는 다른 창발적 투자의 개념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 능력을 자치단체도 키워야 늘어나는 세수에 대한 적정한 집행이 가능하다.

지역신문도 시골다운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한다. 지금 내 이웃에서 일어나는, 소소하나 의미있는 양지바른 곳, 그늘진 곳의 이야기도 찾아내야 한다. 한 달에 단 이틀만 짜장면을 파는 짬뽕전문집의 이야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재미만큼이나 옹골지다.

소위 ‘신문사로 제보되는 고발’도 잘 보아야 한다. 자기들 마을에 들어오려는 공장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환영’ 플래카드를 거는 주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 사이에 무슨 사정변경이 있었고, 상황이 달라졌나? 혹여 뒷거래는 없었을까. 기자의 촉각은 별스러운 곳까지 미친다. 사실대로 보도하다간 앞뒤가 꼬이기도 한다. 신문사 편집국 안에서는 몇 안 되는 기자들이 건(件)마다 토론을 벌인다. 마침내 ‘결론’의 기준은 “이건 아니지 않는가”이다. 그게 ‘정답’이다. 그 정도면 된다. 쓸데없는 사심을 기사에 삽입하는 순간 지역 언론으로서 가치는 복구 불능이다.

그래도 힘을 얻는 건 정기구독해 주시는 애독자의 열정 때문이다. 조금만 배달이 늦어도 바로 전화를 걸어오는 그 관심이 때론 눈물 나게 고맙다. 마을마다 자리 잡고 있는 경로당에서 돋보기를 끼고 침침한 눈을 비벼가면서 우리 신문을 읽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독자에게 절하고 싶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여주신문’을 꼬박꼬박 구독해 주는 분들의 애향심도 빼놓을 수 없다. 내 어릴 적 추억이 살아 있는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고향 여주가 어떻게 더 발전해 갈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더 알찬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그런 소임으로 편집 데스크는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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