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의 강- 한강 제1지류 복하천①

한국의 강- 한강 제1지류 복하천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19.11.13 08:5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 받은 땅 여주·이천을 감싸 도는 안개의 강

이른 아침 영동고속도로 호법분기점, 선잠을 깨며 토해낸 하품처럼 나른한 안개가 강원도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다. 넓은 벌판을 아웃포커스로 만든 안개의 진원은 어디일까. 복하천이다. 용인 양지 제일리에서 발원하는 복하천은 이천 호법에서 장암천과 원두천의 위세를 업고는 국가하천으로 승진한다. 당당하게 이천을 지나 여주 흥천벌에 이르는 동안 나라님께 바치던 쌀을 살찌울 강물을 원 없이 나누어 주고 남한강에 안긴다.

전원주택들이 들어선 양지에서 발원하다

양지IC를 나서면 제일리는 지척이다. 복이 넘치는 강, 복하천의 시발이 여기다. 양지(陽智)란 이름이 주는 어감은 우선 따뜻하다. 그리고 지혜롭다. 수도권 최고의 전원주택지다운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지는 사라진 고을에 해당한다. 이미 1399년 조선조에 현(縣,오늘날의 군)으로 승격되었었고, 충청도 관할에서 경기도 양지군으로 적을 바꾸었다가 1914년에 용인군 양지면으로 강등되었으니 말이다. 양지현으로 일찍 흥성하게 된 배경에는 부산 동래에서 출발하여 한양까지 가는 영남대로의 길목인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복하천 라이딩은 백암, 광혜원, 진천으로 가는 17번국도 옛길 푸르뫼 전원주택 옆 실개천에서 출발하는 것이 제일 호젓하다. 시멘트로 완벽하게 포장된 개천둑이지만 버들강아지도 자라고, 실개천이 휘어나가는 맛도 있다. 그러나 이 강의 수원을 우선 두둑하게 해 주는 것은 근처의 평창저수지의 공이 크다.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 길은 늘 넉넉하다. 시원(始源)을 찾기보다 해답을 미리 보고 푸는 시험 같아 수월하다. 제일리의 강둑도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정부의 예산이란 것이 한 바퀴를 돌아 공사 현장에까지 도착하려면 그 다음해 장마철에 가까워져야 된다. 그러다 큰 비 오면 또 떠내려가고 다시 추경 편성하고....... 제일교에서 추계교까지 잠깐 42번 국도를 빌려 타고 냇물을 건너면 수여선 철길의 흔적이 농로 정도로 남아있다. 자전거의 특권이 바로 이런 길을 유감없이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부러 꼬불꼬불한 철길, 수여선의 흔적을 찾아

마침 국도가 고가로 지나는 다리 밑에서 여름날 계축을 하는 중늙은이들이 한가롭다. 경운기에 먹을 것과 사람들이 함께 타고 온 나들이다. 양지면 동부4개리(제일리, 평창리, 추계리, 식금리)토박이들의 단합대회다. 카우보이모자를 눌러 쓴 한 농부에게 수여선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50년도 더 된 증기기관차의 추억을 떠올리자 양 볼에 화색이 돌았다. 없어진 철길에 대한 갈증은 이내 원망으로 변한다. “철길은 뜯어내더라도 부지는 팔아먹지 말았어야지”  수여선 기차역을 한번 외워 보라고 하자 그는 흔쾌히 줄줄 왼다. 정거장의 명패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세월도 아스라한 기억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기차역 몇 개는 빼어 먹고 말았다. 지나치는 간이역처럼.

사진=여주박물관 제공

내 기억 속의 수여선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67년도로 돌아간다. 문경에서 수원으로 전학 온 그해, 여주 신륵사로 가게 된 가을 소풍의 교통편은 수여선 기차였다. 객차가 부족하니 일부는 무개차에 배정되었다. 무개차라고 하니 실감이 안 난다.  석탄 같은 것을 싣는 뚜껑 없는 화물차다. 다행히 여주 남한강의 자갈, 모래를 싣던 차라 석탄가루가 묻지는 않았지만 가을볕은 따가웠다.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친구들, 키 작은 나는 까치발을 해야 들판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때로 철길은 희미한 흔적도 거부한 채 들어선 집들이 가로막고 나서기도 한다. 그래도 농로로 쓰이는 옛 철길은 물길이 감도는 벼랑에 시멘트 축대로 견고하다.

한국의 폐철도선에 대한 기록은 한 일본인의 답사보고서가 가장 정확했다. 1990년에 5차례에 걸쳐 그는 엄동설한에 수여선을 묻고 물으면서 지도와 대조해 가며 걸었다. 그의 발로 뛰는 답사계획은 중국, 북한의 철도(조선이라고 표현되어)는 물론 유라시아대륙의 노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아물아물한 안성선, 동해북부선, 경북선 안동 구간 등도 포함되어 있다. 철도의 나라 일본답게 마니아층이 두껍다고는 해도 놀랍다. 그들에게 이 협궤철도는 ‘내선일체’를 내건 식민의 향수를 불러오는 소도구일지도 모르겠다.  

식민시대로부터 기적과 함께 오가던 73km의 철길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은 다시 복원되거나 자전거길 혹은 걷기 좋은 길로 태어나는 기초가 되었을 텐데. 아, 사라진 철도의 흔적을 찾아가는 ‘잃어버린 인문지리 기행’이야말로 자전거가 탐내봄직한 테마가 아닐까. 이내 오천삼거리다.

마장보다는 덕평으로 더 알려진 시골 면

시장기를 때울 요량으로 마장면 소재지(오천)로 접어든다. 어차피 물길이야 잠시 제쳐 둔다.

특전사령부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오천은 마장으로 더 알려지면서 아파트와 신축 공장이 부쩍 늘었다. 주로 서울과 가까워 물류공장의 큰 덩치가 시골의 임야를 가득 채웠다.

오래전 오천을 지나다 만난 따뜻한 밥의 기억이 있다.

“누구든지 드십시오. ‘새벽밥 2,000원’ 인동초다이닝, 2,000원”의 상징성은 크다. 더 이상 음식 값으로 2,000원은 그때도 폐기된 가격이었다. 콩국수 한 그릇이 만원에 육박하는 서울 물가가 아니더라도 천원의 값은 지폐의 빛깔처럼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아침 식사’가 아니라 ‘새벽밥’이란 이름은 메뉴 속에서 더 짠하다. 그건 일터로 가는 지아비에게 차려주는 아내의 밥상을 뜻하는 ‘죽은 말’이다. 죽은 말이 살아서 길손을 부른다. 모쪼록 든든히 속 채우고 살아남다 보면 좋은 날 올 거라는 인동초의 작명 또한 예사롭지 않다. 새벽밥은 9시까지만 통용되는 조조할인이다. 대낮이니 열무국수를 시켰다. 아주머니의 말씨가 이미 한국의 식당 서빙을 점령한 ‘연변말’이다. 그녀의 솜씨는 오히려 열무의 싱싱한 기운과 닭곰탕 속에 맛으로 살아났다. 아들과 함께 타관살이가 10년이 다 되어 가니 우리 물정에 환했다. 그 곁에 웃음만 짓고 있는 이국의 할머니, 한눈에 봐도 동남아의 얼굴이었`다. 우리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 할머니는 한국으로 시집온 딸 곁에 머물고 있었다. 할머니의 역할은 고된 노동을 마친 저녁에 소주 안주로 제격인 베트남식 닭요리로 등판하게 된다.

“우리 원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야요. 다문화 사업도 많이 하시는데 오늘 서울에 일보러 가셨지요” 연변아주머니는 주인을 원장님으로 불렀다. 이천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의 정착을 돕는 사회활동을 실천적으로 하고 있다 했었다. 다문화에 대해 일찍 눈을 뜨면서 역할을 모색하고 있는 시대의 얼리어답터인 셈이었지만 지금은 활동의 흔적이 없다. 열무국수에 속이 시원하다. “가까운 곳이니 다시 들릴게요.” 휴대용 물통에 물을 채우자, 말이 통하지 않아도 베트남 할머니는 얼른 얼음통을 들고 나와  “어서 넣으라”는 듯 미소 지었었다.

마장교에서 다시 길을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된 강둑으로 각평교에 이르자, 복하천은 잘 드러내지 않던 속살을 보여주면서 들판을 흘러간다. 광주시 도척면과 경계를 이루는 양각산(386m)에서 시작하는 오천천이 합류하면서 제법 강폭도 자릴 잡아간다. 때마침 영동고속도로는 강원도로 찾아가는 나들이객들로 차산차해(車山車海)다. 덕평휴게소 터는 명당이다. 잠시 커피를 마시고 졸음을 쫓는 정도가 아니다. 강아지 유료놀이터까지 갖춘 정원을 소풍하고, 구색 갖춘 쇼핑을 유혹한다. 호법분기점 근처에서 마주치는, 일상이 된 정체와 지체가 한 몫 거들기 때문일 것이다.

길 위의 차량들이 하품을 하며 마지못해 굴러가고 있을 때, 자전거는 희열로 가득 찬다. 고약한 심보지만 어떡하랴. 페달을 젓는 수고의 대가가 만드는 시원한 바람과 저 수없이 켜지는 정체의 브레이크 등불은 팥빙수 위의 단팥이다. 매곡교, 동산교를 거쳐 주미교에 이를 때까지 땡볕에 굽고 나면 천주교 수원교구의 ‘단내성가정성지’만이 쉬어갈만한 장소다.

강둑에서 한 자전거를 만난다. 중년의 남자는 땀을 흘리며 집게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영주에서 올라온 지 25년이 넘었다는, 호법면사무소 소속 환경미화원이다. 낚시꾼들이나 놀이객들이 줄기차게 버려대는 쓰레기와 전쟁을 하고있는 중이다. “정말이지 별별 쓰레기를 다 버리고 가요. 어느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요. 난생처음 만난 청소전용 자전거에는 깡통과 비닐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 복하천
-한강수계-34.12km
-지방하천구간15.04km,유역124k㎡(경기용인시양지면제일리-이천시호법면 원두천합류점)
-국가하천구간19.8km,유역309.5㎡(이천시 호법면 원두천합류점-한강합류점)
-지류하천 15개 (해월천,매곡천,단천천,동산천,이치천,장암천,두미천,원두천,율현천,장록천,중리천,신둔천,신대천,송말천,내사천)

수여선

-1930년12월(소화5년) 개설, 73.3km ,수원역 등 21개역(1972. 3. 31. 폐선)
-여주, 이천지역의 쌀과 강원, 충청지역 임산물 수송 목적으로 건설되었고, 일반여객도 수송
-경성철도주식회사는 본사 수원에 둔 사설철도(사장 다가와조지로, 전무 나이도신지)
-철도궤도 협궤(762mm)로 표준궤(1,485mm)의 절반정도 폭
  객차 폭 2.15m, 좌석 수 50에 정원90명
*수인선은 1937년 8. 9.개통(수원-송도 간 52km)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