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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둑길-강원-평창강②

한국의 강둑길-강원-평창강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1.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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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700 평창’의 이름을 오롯이 지닌 강, 평창강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평창’은 이제 세계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린 이름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백두대간과 고원지대를 품은 평창은 겨울스포츠의 본산으로 거듭났다. 
평창강은 아래로 갈수록 감입곡류의 본때를 보여주듯 휘감아 돌며 곳곳에 절승을 만든다. 일찌감치 개명한 한반도면에 이르면 동강의 배필이 되어 이름마저 서강으로 바꾼다. 시집간 여인이 택호를 부여받듯, 수컷 동강과 암컷 서강의 음양 대칭도 둘이 합궁하는 영월에서 비로소 끝난다.

벼락과 구름의 골짜기라, 뇌운(雷雲)계곡

대화천이 가로막아 강둑길로는 방림(芳林)으로 바로 갈 수가 없다. 하안미4거리를 거쳐야 한다. 아마 요즘이라면 대화장은 하안미4거리에 서야 제격이다. 금당계곡과, 가리왕산, 청옥산자락, 방림, 대화에서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방림3거리도 경찰의 검문소 목으로서 가치는 크지만 번성할 구석은 없다. 더구나 조만간 평창으로 들어가는 뱃재터널이 완공되고 나면 더더욱 ‘배 째라’고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만 요란할 것이다.

방림면소재지를 지나 방림교에서 좌로 돌면 뇌운계곡이 시작된다. 오래전 가족끼리 한 래프팅의 기억이다. 장마철이었다. 이미 계곡물은 불어나 있었다. 행락객도 뚝 끊겼다. 무슨 생각으로 그 계곡으로 향한 것일까. 사전에 어떤 정보나 계획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여름휴가 일정에 따라 들어선 뇌운계곡, 파리를 날리고 있던 청년들은 래프팅 주문에 기꺼이 응답했다. 4명의 가족으로는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청년 뱃사공 3명이 동승했다. 고무보트는 군데군데서 요동치며 황토물과 씨름했다. 난생 처음 맛보는 래프팅은 즐거움보다 공포로 칠갑을 했다. 강바닥이 훤히 드러난 지금 보니, 바위의 군락 사이로 술래잡기를 하고도 남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 이후로 웬만한 골짜기의 래프팅은 간에 기별도 안 갔다. 그렇게 떠내려갔던 곳, 그 다리가 다수대교였다.

물돌이동(洞)이 들어선 마을의 강은 부드럽게 강줄기를 굽이돌아 영월 읍내로 흘러간다.    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임하마을까지 신나게 달려갔으나 길은 뱀비늘 같은 벼랑에 막힌다. 섶다리 하나, 아니 잠수교라도 있으면 후평리에서 주진리로 이어지는 강마을의 풍경을 제대로 안고 올 텐데 아쉬운 일이다.

노성산(419m)이 가로막은 덕에 산자락 아래에 평창읍이 들어섰고, 물길은 소읍을 휘감아 돌아 영월로 빠져나간다. 원래 평창은 정선으로 넘어가거나 영월로 가는 길목 역할이 고작이고 옥수수엿 공장 빼면 이렇다할 게 없었다. 산판으로 큰돈이 오가는 목상(木商)들도 진부쪽에서 움직였다. 고랭지채소의 유통도, 1974년 들어선 용평스키장도, 대관령의 동해 바람도 모두 영동고속도로가 중심이 되었다. 그래도 평창이라는 이름이 먹는 물병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 또한 홍복(洪福)이다.

잃어버린 고향의 아이콘, 섶다리

평창읍을 우회하는 길도 평창강의 충적지인 종부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자전거는 당연히 31번 국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국도는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한눈을 팔다가는 큰일 나기 딱 좋다. 유리 조각이 포진하고 있는 길섶(갓길은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서)으로 조신하게 가야 한다. 마지3거리에서 국도주행 졸업이다. 31번 국도가 북면을 지나 영월로 향하기 때문이다. 국도가 과감하게 우회로를 만들고, 입체화 할수록 자전거꾼들은 신이 난다. 고객을 잃어버린 구 국도에서 당당하게 새로운 주인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물이 심하게 용틀임 칠수록 국도는 견디지 못하고 새길을 만들어 제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도는 예외다. 악착같이 벼랑을 후벼 파서라도 길을 넓혀놓고는 손님을 기다리나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영월 섶다리다. 지나던 타관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더라도 길섶에 주차하고 일삼아 다리를 건너가 본다. 환갑 진갑을 넘긴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다리이고, 아랫세대에는 민속의 다리다. 섶다리는 10월 추수가 끝나면 만들어 다음 해 장마가 올 때까지가 유효기간이다. 더러는 미리 뜯어 두기도 했고, 더러는 장마에 떠내려갔다. 마을공동체가 신역(身役)을 함께하는 사업이었고 연중행사였다. 섶다리는 튼튼한 지주목과 청솔가지와 황토의 조화였다. 시멘트를 비비고 철근이 자급되면서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다리는 새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횟가루와 황토는 양회에 밀려났다. 자고 났더니 다리가 없어져서 ‘미다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강 건너 마을은 이제 시멘트 다리가 놓였고 섶다리는 여벌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강섶 십리 길

주천으로 가는 82번 국지도가 갈라지는 장충약수터부터 매운리까지 십리 길은 평창강 길 가운데 아직은 남아 있어줘서 고마운 길이다. 강물과 거의 같은 눈높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충리의 두어 집과 눈치 빠르게 자리 잡은 고급펜션 하나를 빼놓으면 인적도 드물다. 시멘트 포장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호박돌 위로 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 강 따라 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십리 길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매운교를 지나면 산자락 사이로 얼핏 보아도 정수리가 좀 수상한 산이 나타난다. 배거리산(852m)이다. 현대시멘트가 석회석을 채굴하고 다시 복구한 것이다. 옛날 한 착한 부부가 홍수가 나자 배를 탔는데 점차 물이 차올라 그 산 꼭대기에 배가 올라붙어 살았다는 전설의 산이다. 산 아래 길은 포장이 멈춘 채로 노반만 닦아 놓은 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참 오래 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신작로의 모습이 바로 이랬다. 빠르르 힘을 주어야 오를 수 있는 S자 고갯길은 지도를 보니 ‘통두둑’길이다. ‘두둑’은 넉넉한 밭이랑 언덕이다. 여인의 둥두렷한 언덕 불두덩이 떠오른다. 음란서생의 문집에나 등장할 만한 연상의 꼬리를 잡고 혼자 씨익 웃는다.

한반도를 선점한 영월군 서면

평창강은 한반도면 선암마을 근처에서 주천강과 합류하여 세(勢)를 불린다. 이름도 서강(西江)으로 개명한다. 그렇다고 서강이 어느 날 갑자기 갖다 붙인 이름은 아니다. 19세기의 <조선지지자료>에서도 등장한다. 동강의 위세에 눌려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동강이 숫강이고 서강이 암캉(江)에 속한다. 조상님들의 음양에 대한 고려는 집착에 가깝다. 그래야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영월군 서면(西面)이 한반도(韓半島)면으로 바뀐 것도,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바뀐 것도 다 스토리텔링의 결과다. 뱀꼬리 치거나 용틀임 쳐 한반도 모양을 한 곳이 이 땅에 한 둘이겠는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고, 전라도 화순 땅에서 죽은 김삿갓의 묘를 첩첩 산골짜기 소백산 자락에서 찾아내 스토리를 만들고, 숱한 한반도지형 중에서도 잽싸게 행정명칭까지 바꿔 선점한 것은 스토리텔링을 아는 문화 영월의 힘이다.

장사꾼 속셈이라 해도 할 수 없다.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 옆 조망대 주차장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버스로 북새통이다. 모터로 가는 뗏목체험일망정 사람들은 한반도의 아랫도리를 빙 둘러보며 자연의 오묘함에 넋을 놓는다. 한반도 지형 덕에 새 길도 놓이고 새 다리도 놓였다. 다만 자전거 나그네들은 강섶으로 유유자적할 길을 잃었다. 화병교에서 들골교 언저리 얘기다. 남면 소재지인 연당에서 다시 서강은 길을 끊어 놓는다. 각한재가 있는 완고한 바위산 자락은 머슴의 억센 주먹 모양을 하고 소나기재를 향하고 있다. 지금이야 각한터널이 뚫려 서강 표지만 그늘 속에 스쳐 지나갈 뿐이다. 영월사람들이 제천 우시장으로 소를 끌고 넘어가자면 얼마나 가파른 고갯길이기에 소뿔에 땀난다고 ‘각한(角汗)재’라 했을까.  

청령포로 가는 길

다시 국도로 재진입이다. 연당교와 곤충박물관을 지나면 국가 명승 76호인 ‘선돌’이 있는 소나기재 정상으로 오르는 긴 오르막길이다. 100m를 강가로 나가면 석회암이 만들어낸 절리 사이로 멀리 서강과 강마을이 보인다. 땀을 식히고는 청령포까지 내리막길이다. 확실히 영월은 북적거린다. 태백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만이 아니다. 영화 ‘라디오스타’가 만든 훈훈한 소읍의 이미지와 별이 쏟아지는 ‘별마로천문대’가 영월을 굽어보며 도회에 지친 심신에게 꿈을 선물한다. 단종의 애달픈 역사와 그 뒷얘기는 장릉과 청령포의 문화해설사에게 들어보면 더한층 실감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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