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기억을 잡아 먹는다
아픈 기억일수록 기억의 벼랑에 서 있다
그날의 기억이 숱하게
역사 앞으로 걸어 나왔다
더러는 기억의 더미에 깔린 채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기억이 이렇게 너절하게 될 줄이야
기억을 정의와 붙들어 연대의 끈으로
묶었는데 헐거워져 버렸다
스스로 가슴을 풀어 젖힌 시대 정신
세상은 청백전 줄다리기로
저마다의 기억으로
저마다의 셈으로
연대를 새끼꼬듯 비트는 봄
열일곱
꽃다운 나이가 찾지 못한 꽃
노란 나비로 날아간 기억이 흐리다
그나마 장미라도 피어 입술을 칠해 준다
*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기억의 터’라고 이름 지었군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그리했겠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잊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정의와 기억과 연대가 엉켜서 충돌합니다. 신록이 오고 있는 계절에, 이 힘든 세월에, 한 시대의 기억을 둘러 싼 고름이 툭 터져버려 정신이 휑하니 비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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