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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9. 하늘이 함께하는 사람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9. 하늘이 함께하는 사람

  • 기자명 여주신문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8.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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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역사를 돌아보면 큰 원한을 가질만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가까이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습니다. 권력을 잡고 싶은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한 일입니다. 이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과 유족은 말로 할 수 없는 큰 원한을 가지게 됩니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군인집단은 위세를 떵떵 부리다가, 권력을 잃은 뒤에 법정에서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그러나 곧 풀려납니다. 큰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을 이용해 ‘화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묵은 원한을 털고 새롭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화해 메시지’의 상징으로 학살자들을 풀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화해는 깊은 아픔과 원망으로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원한의 대상이 전혀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큰 원한은 화해를 해도 반드시 원망이 남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보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규가 나옵니다. 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한 범죄자가 자신은 하느님에게 죄를 빌었고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엄마는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직접 피해당사자인 자기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용서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물론 범죄자가 아이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용서를 빌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원한은 어떤 식으로 화해를 해도 원망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덕 있는 이는 계약을 맡고 덕 없는 이는 거두어들이는 것을 맡는다.”

덕이 있는 유덕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고 합니다. 계약을 맡는다는 것은 좌계(左契)를 잡는다고 표현하는데요, 좌계는 빚 받을 문서를 말합니다. 예전에 대나무 쪽에 차용증을 쓰고 그걸 둘로 나누어 빚을 받을 사람은 왼쪽을 갖고 빚을 갚을 사람은 오른쪽을 가졌습니다. 유덕자는 좌계를 잡고 있지만 결코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기다리며 빚을 스스로 갚을 수 있도록 덕으로 감싸 안는다는 것이죠.

반면 덕이 없는 무덕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을 씁니다. 때로는 내 눈에 상처를 냈다면 상대 눈은 파 버리는 정도로 더욱 강하게 갚기도 하는 방식입니다. 노자는 이것을 ‘철저하게 거두어들이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과연 어떤 방식이 좋은 것일까요? 노자는 말합니다. 그 어떤 것도 잘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이죠. 어떤 방식으로 화해를 해도 큰 원한은 원망이 남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덕자의 방식도 무덕자의 방식도 모두 원망을 남긴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할 따름이다.”

유덕자도 무덕자도 그 누구도 하늘은 편애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착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선인(善人)’은 과연 누구일까요? 나는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일의 가해자든 피해자든 마침내는 선인이 될 수 있다고요. 유덕의 방식이나 무덕의 방식이나 그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든, 최대한 원망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자면 ‘빚’이나 ‘피해’에 대하여 진실이 말해져야 합니다. 진실의 바탕 위에 무덕이나 유덕이나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거짓이 바탕일 때엔 그 어떤 방식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결국 ‘선인’이 된다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은 바로 그 선인과 늘 함께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진실이 숨겨지거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어떤 방식도 선인이 되는 길은 아니라고 해야겠죠.

 

<노자 도덕경 79장 : 和大怨(화대원)은 必有餘怨(필유여원)이니 安可以爲善(안가이위선)이리오! 是以聖人(시이성인)은 執左契而不責於人(집좌계이불책어인)하나니 有德司契(유덕사계)하고 無德司徹(무덕사철)이니라. 天道無親(천도무친)하여 常與善人(상여선인)하나니라.>

 

큰 원한은 화해를 해도 반드시 남는 원망이 있으니 어찌 잘한 일이 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성인은 빚 문서를 들고도 사람에게 독촉을 하지 않느니, 덕 있는 이는 계약을 맡고 덕 없는 이는 거두어들이는 일을 맡는 법이다.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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