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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과 도덕, 그리고 예의와 얌체

기자수첩- 법과 도덕, 그리고 예의와 얌체

  • 기자명 이장호 기자
  • 입력 2020.10.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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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요즘 유행하는 가정용 태양광발전설비를 지붕에 설치하던 이웃들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설치하려는 사람의 집 옥상에서 가장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업체 담당자가 현장 조사를 나왔고 그 사람은 가장 효율적이 자리를 찾아서 설명했다. 그가 찾은 위치는 그 집 옥상이기는 하지만 옆집 지붕과는 80cm가량 떨어져 있는 곳 이다. 그리고 대략적인 높이로 볼 때 옆집 옥상에 하루에 서너 시간 100cm 정도의 그늘이 조금 드리울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루에 서너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설치하려는 사람이 이웃집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니 이웃집 어르신이 “아이 그 정도야 괜찮아.”라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하루에 서너 시간 이웃집에 그늘이 드리우는 일은 그야말로 사소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이런 행동을 우리는 예의(禮儀)나 염치(廉恥)를 지킨다고 한다.

요즘 신문사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일로 독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시청과 같은 행정기관이나 지역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위해 공사를 벌이는 기업체와 관련된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웃사이의 일들이다.

외지에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이사 온 사람이 경계측량을 하고 울타리를 쳐서 수십 년간 마을사람들이 사용해 온 길을 막아 멀리 돌아서 다니게 생겼다거나, 앞집이 가정용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해 조망권을 침해받았는데 옆으로 옮기게 할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런 전화 사연의 대부분의 말미에는 “시청에 말했더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말이 덧붙는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말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은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삶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법을 위반하면 마땅히 제재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법을 지켰다고 해서 어떤 결정이나 행위가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은 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을 우리는 도덕(道德)이라고 한다. 법은 도덕 가운데 공동체 생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강제적으로라도 지키도록 정한 것이므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도 불린다.

도덕의 여러 규범 중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최소한을 정한 것이 법이기에, 법은 도덕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권리남용과 같이 부도덕이 파고들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과 절차를 지켰으니 잘못이 없다거나 바른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궤변이다.

일반적으로 이웃 간의 갈등 예방의 최우선으로 일반적인 도덕과 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이 발생한 때는 예의를 지켜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여 자신의 주장을 말해야 하며,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처지를 반영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이웃집 사이에도 이런 예의(禮儀)와 염치(廉恥)를 아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관련한 일이라면 헌법에서 정한 행복추구권과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더욱 신중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보통 사람은 법을 중시하지만 예의(禮儀)와 염치(廉恥)도 안다. 그리고 우리는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얌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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